나의 멘토 스코필드(Schofield)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캐나다에서 한국에 파송된 수의과 의료선교사로서 세브란스 의학전문에서 세균학을 가르쳤다.

1919년 3.1운동시 그는 신변에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서와 탑골공원에서의 만세시위와 일본인들에 만행을 사진으로 찍어 외국으로 보내 국제 사회에 알리는 등 아주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독립선언 33인 다음 34인으로 추앙받은 분이다.  그는 1919년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1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캐나다로 추방되어 모교인 온타리오 수의과대학 교수를 하며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젖소를 연구하다가 목초용 ‘스윗 클로버(Sweet clover)’에서 항혈액응고제인 ‘큐머린(Cumarin)’을 발견하여 오늘날에도 의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1958년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을 은퇴하면서 당시 70세인 스코필드 박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수의병리학을 가르치며 남은 여생을 한국에서 마쳤다. 그는 1970년 4월12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국립묘지에 안장된 분이다.

필자는 연건동에 있었던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그로부터 직접 강의를 받은 바 있는데  아주 엄격하고 철저하고 실력이 있어 당시 한국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추앙 받으신  교수였다. 하도 무서워 호랑이 할아버지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이 훌륭한 교수 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여러 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기독교 지도자들을 기르는 선교사역에 열심 하였다.

또한 그는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시 카나다 정부와 온타리오 대학으로 부터 은퇴 연금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자비 선교사로서 서울대에서 봉사 하였는데 많은 가난한 학생 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전 서울대총장등 한국의 많은 지도자를 키웠다.  더욱 훌륭한 일은 그가 여러개의 고아원을 돕기도 했다. 그중에 하나인 서울 뚝섬 건너편에 자리잡은 ‘봉은 보육원’이 있었는데 당시 그곳에는 80여명이 살고 있었다.  고아원 주변의 대지 300여평을 구입 채전과 토끼장을 만들어 채소와 토끼고기를 먹게 하였다.

필자가 스코필드 선교사를 모델/멘토로 삼는 것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어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전문인 수의과 의료 선교사로서, 정부 은퇴금을 갖고 자비량 선교사로서 또한 초빙교수로서 선진국 학문을 후진국에 전달 하는등 필자는 그가 손수 행하였던 사역의 길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 나라 캐나다에서 아주 가난하였던 한국을 위해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교육하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또한 고아원을 도왔던 스코필드 선교사를 멘토로, 모델로 주신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과테말라 수의과 의료선교에 참여 하면서 선교 사역 모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계속 깨닫게 된다.

 

About Hyun Joseph

Veterinary Missionary and Professor Visitante, University of San Carlos in Guatemala
This entry was posted in News.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