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을 방문하였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셔우드 홀 (Dr. Shewood Hall)의 자서전 ‘조선회상’을 구입 하였다. 그의 아내, 부모등 4명이 모두 의사로 조선에서 의료선교 개척자로 일생을 바친 한국 초기 기독교 선교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 책 내용중 ‘화진포의 성’이 등장한다. 다 읽기도 전에 전혀 예상치도 않게 동해안 3.8선 이북DMZ 최북단에 있는 그곳을 답사 하며 큰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건물과 주위환경이 책속의 당시 사진과 같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동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푸른 소나무가 우거진 나지막한 작은 산등성에 아름다운 하얀 돌집이 홀로 서있는데 그 규모는 작았지만 독일 성(castle)을 연상케 하였다. 히틀러 독재에서 도망 조선으로 피난 하고 있던 독일 건축가 웨버 (Herr Weber)가 라인강변의 한 성을 모델로 하여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것이다.
100여년전 미국 선교사의 경험을 직접 집필한 책속의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 하게 되니 사역내용이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또한 나의 과테말라 선교와 비교 하면서 줄을 쳐가며 열심히 읽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주고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하여 주고있다.
한국이 지금은 세계적 문명국가로 발전하였지만 불과 백년전 당시 미국 선교사들의 눈에는 세계에서 가장 미개한 나라로 인식 되었다. 책속에는 젖가슴을 열어놓고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사진이 있다. ‘조선사람들은 젖가슴 노출을 서양인의 팔꿈치를 내 놓는 정도로 생각 하는 모양이다’ 라고 혹평 하였다. 선교사에게 시골 여행시 ‘버스를 타기전 물을 마시지 말라’는 대목도 있다. 이는 조선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가다 세워놓고 길가에 서서 미개인 처럼 소변 보는것을 지적 한 말이다.
또한 신임 의료선교사에게 ‘당신의 시계는 환자들의 맥박을 재는 일 외에는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시간을 따지지 않는 조선에 와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라고 말 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과테말라를 보면 100년전 미개지 조선에서 있었던 그대로 나의 눈에도 목격되고 있다. 조선회상은 과테말라를 더욱 이해 하게 하였다.
셔우드 홀 부부는 해주에 결핵요양원 설립, 교회당 건축, 모범 농장 설립등 성공적인 농촌을 개발 하였다. 마을 중앙에는 빨간 지붕의 교회와 푸른색 과수원과 풀을 뜯어 먹는 홀스타인 젖소등 색갈의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고 풍성한 마을임을 보여주고 있다. 교육, 의료, 목회, 농업등 전문인 선교사들이 함께 협력선교를 통해 마을이 정신적 (영적),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립을 하고 있다. 나의 과테말라 산칼로스대와 공동으로 하는 농촌개발사역에 모델이 되며 용기와 확신을 주고 있다.
해주 농장 설립 과정을 보면 현재도 미국에서 유명한 제이시 페니 백화점의 창시자 페니(James Penney) 는 당시 착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크게 성장하는 사업가인데 그렇게 바쁜 과정에도 알지도 못하는 조선을 위해 직접 물질적 후원과 그의 미국 농장 기술자를 조선에 파송 해주 농장을 세워 도와 준 것이다. 다른 미국 농업 선교사 두 사람도 농촌개발을 도와 주었다. 당시 조선에는 능금만 있었는데 사과 묘목150개를 미국에서 들여와 황해 지역에 퍼지게 하였다. 젖소, 젖염소등 새로운 품종을 수입 우유도 먹게 하였다. 정부가 아닌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의 서양식 농업과 낙농업이 소개 된 것이다.
100년전 그렇게 게으르고 못살던 조선인들이 지금은 ‘빨리빨리’ 문화로 바뀌어 세계 선진국으로 발전하게 된 기본 중에는 미국 선교사들과 제시 페니같은 물질적 후원자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미국에서 잘 살수 있는 특권을 내려놓고 가난한 조선을 택한 사람들이다. 재미교포로서 그들에게 빚진 자들임을 깨닫게 하여 주고 있다.
김현영/과테말라 산칼로스 국립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