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글은 PGM 20주년을 맞이하여 2018년10월 출간한 “PGM 20년, 끝나지 않은여정”에서 PGM을 반석에 올린 사람들 5명중 한사람으로 소개된 내용입니다.
PGM을 반석에 올린 사람들
성령으로 영생을 거두라
– 김현영 선교사 –
수의사 출시인 김현영 선교사는 PGM의 위상을 더 높은 ‘자비량’, ‘전문인’ 선교사의 대명사다. 그는 2007년 PGM의 파송을 받아 중미 과테말라로 의료 전문인선교사로 떠났다. 신학교 졸업 후 떠나려고 했던 젊은 시절 품었던 선교사로서의 꿈이 40여년 만에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김 선교사가 10여년 간 과테말라에서 펼쳐낸 선교의 ‘그림’은 크고도 심오했다. 그는 단순히 ‘선교사’ 타이틀만 가진 그렇고 그런 선교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떠난 선교였지만 선교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컸기에 나이는 그에게 그저 숫자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의 주요 선교터전은 국립대학인 산 칼로스 대학이었다. 그는 초빙교수로 임명된 후 동료 교수들과 학생, 낙농업자들을 대상으로 낙농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사비를 털어 현미경 등 값비싼 실헌기구를 구입, 동물병 진단 연구실도 교재에 만들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학교로부터 신임을 얻은 그는 이후 산 칼로스 대학을 선교 전진기지로 삼고 교수와 학생들에게 영어 성경교육을 하고 제자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학선교의 주력했다. 아울러 캠퍼스 밖에서는 치섹 갈릴리 선교공동체와 더불어 농촌 개발을 통한 교회개척, 교회개척을 통한 농촌 개발에 주력했다.
김 선교사가 영어와 성경, 낙농 등 전문분야를 매개로 삼아 과테말라에 선교지평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선교 이전의 삶이 크게 덕이 됐다. 그는 “지난 일생을 되돌아 볼때 하나님께서 한 순간에 저를 과테말라 선교사로 보내신 것이 아니었다”며 대학시절부터 꿈을 주시고 신학공부를 시키시고 이후 최 선진국인 미국으로 보내 세계 공통어인 영어를 익히게 하고 직업적 전문인으로 훈련시키셨다” 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서울대와 펜실베이니아대 등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 주정부 수의과 연구소에서 낙농동물을 연구하는 수의 병리연구관으로 33년간 봉직했다.
그는 청년시절 의사이자 선교사로 아프리카에서 헌신했던 슈바이처 박사의 일생을 흠모해 선교사가 되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미국에 온 뒤 헤리스버그한인장로교회에 출석하며 교회장로로, 총회(PCUSA) 및 노회 선교위원으로 섬기며 선교 행정을 두루 익혔고 시베리아, 멕시코 등지도 단기선교도 다녀왔다. 특히 굶주림에서 해방시켜 자립하게 하는 구호단체인 Heifer International의 일원으로 과테말라에서 기아해방 선교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것이 그가 나중에 과테말라 선교사로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제 그가 가장 존경하고 멘토로 삼는 선교사는 스코필드 선교사와 사도바울이다. 영국태생으로 캐나다로 이민한 스코필드 선교사는 세계적인 수의병리학자다. 그는 고희에 은퇴해 서울대 수의과 초빙교수로 한국에서 수의학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사도바울도 철저하게 훈련받고 40세가 넘어 선교여행을 떠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철저히 훈련받고 나이 지긋해서 선교를 떠난 공통점이 있다. 김 선교사도 수의학 분야에서 세계최고의 교육과 훈련을 받고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선교를 떠났다는 점에서 이들과 공통분모가 큰 대기만성형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다.
PGM 국제대표인 호성기 목사는 “저는 visionary 지만 김 선교사님은 vision receiver 겸 vision practitioner”라고 평했다. 호목사는 김선교사가 PGM의 핵심가치를 정확히 꿰뚫고 그것을 실질적인 선교의 현장에 적용, 복음을 확장시킨 것을 높이 평가한다. 실제로 김선교사는 PGM 인턴 선교사 훈련이나 선교사대회 세미나 등을 인도하며 PGM 핵심가치를 설파하는 단골 선교사인데다 선교현장에서 요긴하게 쓰일 ‘선교용 젖염소 기르기’라는 책자를 발간해 젖염소를 통한 선교에 활용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아내(이덕주 선교사)와 함께 선교사로 나간 과테말라에서의 11년간의 선교사 생활이 생애 최고의 황금기였으며 부부가 함께 사역해서 플러스 2가 아닌 플러스 3의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또 다른 보람”이라고 말했다. 아내인 이덕주 선교사는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 사역을 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장차는 가르치는 대학생들의 젖염소 사육교육 등 농촌활동을 통해 농촌을 혁신시키는 과테말라판 새마을운동을 펼칠 꿈을 키우고 있다. 이런 공로로 그는 서울대 동창회가 주는 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는 주님 말씀을 늘 품고 살아온 김선교사는 ‘아메리칸 드림’이 아닌 ‘킹덤 드림’을 꿈꾸는 과테말라의 축복의 통로다